노숙인이 노숙인이 아니야

 

* 사진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홈리스뉴스 40호-꼬집는카메라

 

한국 힙합 음악의 주류를 거쳐 대중음악 선두주자의 자리까지 오른, 남성 2인조 그룹 리쌍이 있다. 그들이 부른 곡 중 “내가 웃는게 아니야”라는 곡이 있는데,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상황이거나 실소 밖에 나오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이르는 노래다.

 

거리 노숙인이나, 노숙인시설을 이용하는 이용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마찬가지다. 노숙인이 도움을 받아야 할 나그네,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쪽방 주민이나 고시원 등 주거취약계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삶에 있어 무진 애쓰며 노력하는 사람, 도움이 절실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아쉽게도 노숙인시설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는 노숙인은 노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있다. 그러나 실상 쪽방촌과 노숙인시설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생활양식만 조금 다를 뿐 가치관이나 삶을 영위해 나가는 태도는 비슷한 사람이 많다. 무엇이 그들을 거리와 시설로 내몬 것일까. 

 

고등종교의 경전들은 나그네 된 자, 고아와 과부, 지극히 작은 소자,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이에게 베푸는 자비와 양선이 가장 큰 사랑의 실천이라고 말한다. 타성에 젖은 노숙인의 게으름을 용인할 순 없지만, 정말 어려움을 당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지 기꺼이 손 내밀어 붙잡아 주어야 한다. 선입견을 지닌 사람들은 왜 그토록 노숙인이 게을러지고 사회로부터 도태되었는지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냥 단순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덕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고 단죄하기 바쁘다. 한 사람의 처지와 형편을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건 특정 사건을 두고도 조심스러워야 할 부분이 많다. 더 나아가 한 인생을 놓고 ‘옳다’, ‘그르다’의 잣대만으로 평가하는 건 사람을 살리는 인본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오늘날 사회풍조에 비추어 봐도 꽤 거리감이 느껴진다.

 

노숙인을 탈노숙 시키는 데 신용회복 지원과 자활프로그램 등 여러 좋은 사업이 있겠지만, 가장 큰 공헌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업이다. 가령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희망의 인문학'과 같은 사업이 그렇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고, 배움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과정. 뛰어넘기 힘든 자신의 과오나 인생 여정을 남이 아닌 스스로 깨닫고, 평가하게 만드는 사업이다. 의식을 깨우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성 노숙인이라 불리기까지 하는 장기 입소인, 이용인이 지닌 특징은 소유와 책임에 대한 의식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그래서인지 노숙인 하면 ‘의리’가 많다. 유튜브의 영상만 봐도 노숙인들의 자연스러운 ‘나눔’이 각광 받는다. 나름 노숙인시설에서 자기 편의와 만족을 추구하지만 그들이 목표의식이 없다는 점은 사회복귀의 필요성과 더 힘쓰며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상실시키기에 충분하다. 

 

노숙인으로 하여금 삶의 목표를 재설정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공동체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장기 노숙인들이 노숙인시설에서 안락함을 누리는 이유 중 하나는 이용인 간의 연대감이다. 그 연대감과 유대관계가 때로는 봉사와 헌신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타 지역 노숙인시설에서는 이삿짐을 나르는 봉사 등 지역사회를 위해 이바지하는 입소인들이 있어, 지역 주민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이와 같은 건강한 연대감이 사회복귀라는 진취적 자세, 목표로 전이 될 수만 있다면 노숙인의 자활이 보다 체계적인 정책으로 구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김사인 시인의 ‘노숙’이라는 시와 같이, 사회적 시선이 노숙인을 향해 한 번쯤은 측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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